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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 전 세계 사로잡은 'K-좀비' 파워

by Ms.만능 2022. 2. 1.

 <지금 우리 학교는> 전 세계 사로잡은 'K-좀비' 파워 



*본 포스팅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명백한 좀비물입니다. 허나 이와 동시에 가슴 저미는 참극입니다. 좀비떼의 무수한 출현만큼이나,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회적 문제로 표상되는 '약자' 또는 '부패'와 같은 상징성을 품고있습니다. 그리고 12회에 이르러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세월호 참사. 학교가 바로 세월호를 뜻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은, 작품 통째로 본 참사를 은유합니다.

 

 

 

 


스케일 크게 좀비를 미끼로 가져다 쓴, 비탄의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공포심만 자아내는 접근이 아닌, 매신마다 시사적인 사건을 표상되게 담아냅니다. 물론 서스펜스도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바닥을 기어다니는 좀비의 기괴한 모습은 꿈에 나올까 무섭고, 각종 장기가 탈장된 채 생존자를 쫓아 다니는 좀비떼의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허나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물의 탈을 썼을 뿐, 가장 크게 운반해내는 건 '세월호 참사'의 복기(復棋)입니다. 

미국이 원형지인 좀비물은 B급 분류의 원초성에 의존한 단순한 작품이 과거 인기였습니다. 허나 한국에 당도한 좀비물은, 물고 뜯는 '혈투'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에게 의협심을 실어 넣어 사회 단면의 탐욕과 이기를 크게 운반해왔습니다.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는 인간의 탐욕에서 좀비 출현의 기원을 찾았고, 영화 '부산행'과 '반도'는 인간의 이기(利己)를 가감없이 보여줬습니다. 물론 좀비를 구현하는 기술력도 점진적으로 완성도를 높여왔습니다. 전문 안무가를 기용해 좀비들의 디테일한 움직임을 구현했고, 특수분장가를 투입해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이에 더해 '한국형 좀비물'의 정점을 찍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이 잘 마련해준 좀비의 그럴 듯한 모습을 잘 발판 삼아, 더한 모션 디테일을 심고 더한 시사성을 담아 'K-좀비물'의 정점을 찍습니다.

 


5화 중반부, 대다수가 좀비가 된 상황에서 살아남은 한 학생 무리(장하리(하승리) 정민재(진호은) 박미진(이은샘) 유준성(양한열))가 양호실로 무사 이동합니다. 구급약품을 비롯해 전화기, 컴퓨터, 안락한 침대까지 있었지만, 통신이 먹통이 된 걸 확인하고 체육관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겁에 질린 준성(양한열)은 "우리 그냥 여기 있자. 어른들이 알아서 구하러 오겠지"라며 친구들을 설득하려 합니다. 허나 하리(하승리)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있고 싶으면 있어. 그런데 난 어른들 안 믿어"라고. 이 작품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사입니다. 그리고 이 대사를 내뱉는 하리의 등 뒤로 노란색 벽이 눈에 번뜩 들어옵니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처음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작품이 시사하고자 하는 건 물론 세월호가 대표적이지만, 또 다른 메시지도 담습니다. 학교 폭력의 심각성입니다. 애초 이 비극의 시작이 학교 폭력에서 발단됩니다. 아들의 학교 폭력을 지켜볼 수 없던 과학자 아버지의 절망이, 좀비 바이러스를 탄생시켰습니다. 특히 '부산행' 속 김의성의 역할을 소화하는 이나연 역의 이유미는 거의 매 신에서 홧병을 부릅니다. 학우에게 '기생수'(기초생활수급자)라 부를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게 인정 없는 차별을 보여줍니다. 모진 학교 폭력을 당하던 피해 학생들이 좀비 사태를 겪어내는 묘사도 꽤 흥미롭습니다. 강한 분노로 변이해 생존하거나, 절망의 순간 외면으로 고스란히 갚아주거나. '지금 우리 학교는'은 현재 우리 사회의 학교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기도 합니다.

 

 

 

 


허나 이 이야기를 힘있게 옮겨낼 수 있던 건, 좀비물의 기본적 역할 수행을 잘 해낸데 있습니다.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정작 좀비물의 긴박감이 상실됐다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한 메시지가 관객에게 가닿지 못했을 거입니다. 좀비가 창궐하고 아수라장이 된 학교의 상황을 처음 보여주는 1회 급식실신은 200여 명이 투입된 대규모 몹신입니다. 좀비를 처음으로 마주한 이들의 공포와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줘야 했고, 이재규 감독은 이 대규모 단체신에서 무려 원테이크를 감행했습니다. 덕분에 쉴 틈 없는 액션을 쏟아내며 순간에 압도되는 강렬한 박진감을 선사했습니다. 5회 청산(윤찬영)과 귀남(유인수)의 도서관 대립신도 짚어줘야 할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 장면은 무려 나흘간의 촬영 끝에 완성됐는데,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도서관 책장의 묵직한 스케일만큼 두 배우의 몸사리지 않는 열연이 인상깊게 눈을 휘어잡습니다. 특히 컷이 단절되는 순간 아이들의 급박한 상황과 감정이 단절될 우려까지 생각해 컷 분할 없이 공간에서 공간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신마다 힘을 줬습니다. 

 


신선한 얼굴이 대부분인 주연배우들은 발군이 여럿 보입니다. 일단 양궁부 3학년으로 등장하는 하승리는 아역배우 출신답게 안정감있는 톤과 모션으로 극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 '오징어 게임'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이유미 역시 한대 쥐어받고 싶은 밉살스런 연기로 감초 역을 톡톡히 해냅니다. 툭하면 담배를 찾는 3학년생 이은샘과, 극중 대표적 빌런 유인수도 이 작품에서 발견한 숨은 샛별들입니다. 타이틀롤 박지후(온조 역)나 윤찬영(청산 역)의 연기는 무난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누구 하나 돋보이기보다 배우들의 앙상블 힘으로 장장 12부작을 끌어갑니다. 바로 이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상징하는 걸로 읽혀집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그간 6~8부작으로 짧게 시리즈를 완성해왔던 기존 드라마와 달리, 12부작에다가 60~70분을 꽉 채운 러닝타임으로 길게 호흡을 끌어갑니다. 때문에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전개가 늘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허나 이는 12회에 이르러 보여주고자 한 메시지의 포석을 최대한으로 깔아놓기 위한 부연이었음을 이해시킵니다. 허나 12회의 은유를 넘어선 직설적인 장면 묘사는 장르물인 줄 알고 장장 12부작을 함께 달려온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허탈감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보고 나면 남는 잔상이 좀비물의 서스펜스보다 '세월호 참사'의  먹먹함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잊어서는 안 될 사건임은 분명하나, 보다 은유의 멋을 녹여내 매끄럽게 끝맺음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분명한 건 전 세계인을 사로잡을 'K-좀비물'의 탄생이라는 거입니다.

 

로튼토마토 '지금 우리 학교는'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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