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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보배 김혜수, 그가 있기에 가능했던 <소년심판>

by Ms.만능 2022. 2. 28.

 믿보배 김혜수, 그가 있기에 가능했던 <소년심판> 



지난 2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소년심판'이 공개됐습니다. 김혜수의 첫 번째 OTT 출연작이자 영화 '내가 죽던 날'(2020)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공개 특성상 10화 전체가 공개되었고 18세 관람가 등급임에도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에서 콘텐츠 순위' 1위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공개 직후 완성도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근래에 공개된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들이 흥행과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가 있었다면, '소년심판'은 소년 범죄라는 사회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면서 법정 드라마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 수작에 가깝습니다. 자극적인 수위의 연출이나 '드라마 끊기 신공' 없이 오로지 작품으로만 승부하는 드라마여서 더 반갑습니다. 다음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흡인력 있는 전개가 다음 화를 저절로 보게 만든다면, 마지막 화까지 정주행할 수 있도록 이끌고 그 물리적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주인공은 단연 김혜수입니다.

 
"나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소년심판'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판사 심은석의 대사입니다. 캐릭터의 성격과 사연을 함축한 중요한 대사로 극 중에서 여러 번 언급됩니다. 자신은 소년범을 혐오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판사의 태도는 과연 옳은가, 그러면서 왜 소년부를 전전하는가, 그는 왜 소년범을 혐오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이 드라마의 구심점입니다.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한 심은석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냉랭한 태도를 보입니다. 동료 판사들이나 법원 직원들에게나, 법정에 서는 소년들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맡은 사건에만 몰입하며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심은석의 말과 행동은 차갑고 단호하나 김혜수는 감정을 쉽게 삼키거나 내뱉지 않습니다. 감정을 머금는 연기로 캐릭터를 뜨겁게 만듭니다. 

 

 

 

 


특히 김혜수의 대사 톤은 시청자들을 휘어잡습니다. 차분한 어조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높고 낮아지면서 메시지와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소년범들에겐 '너'라고 지칭하고 '감히'라는 부사를 붙여 위압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사건을 키우지 말라는 부장 판사에게 "보여 줘야죠, 법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야죠, 사람을 해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라며 법의 엄정함을 외칩니다. '소년심판'에는 소년범죄와 관련해 귀담아들어야 할 대사들이 등장하는데 대다수가 김혜수의 입을 빌려 또렷하게 전달됩니다. 

 


냉철한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김혜수의 눈은 선한 의지를 내뿜습니다. 책상에서 사건 문서들을 살필 때, 재판석에 착석했을 때 눈앞에 놓인 피해자들의 사진을 응시하는 눈빛은 결연합니다. 자식을 잃은 피해자 부모와 대면할 때에 불거지는 눈시울, 가정 폭력으로 딸을 거리로 내몬 아버지를 향해 똑바로 치켜뜨는 두 눈에서 계산된 연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배우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정직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서 눈으로 전해집니다. 김혜수의 크고 맑은 눈은 배우가 지닌 고유의 특징인데 연기 경력 36년 동안 한결같이 생동감을 유지해온 관리 능력이 새삼 놀랍습니다.

여기서 짚고 싶은 건 김혜수가 작품마다 얼마나 연기를 잘했고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느냐가 아닙니다. 김혜수의 연기력과 캐릭터를 고르는 안목은 이미 인정받았습니다. 김혜수라는 배우는 그 판단 여부를 뛰어넘어 배우가 어떤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작품에 임하는지를 가늠해 보게 합니다. 위에 언급한 최근 출연작들로 '감히' 헤아려본다면 그가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작품에 임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종으로 살피면 형사, 변호사, 판사는 김혜수가 이전에 연기한 외양이나 성격이 강렬한 캐릭터들보다 되레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하지만 김혜수는 많은 영화가, 드라마가 숱하게 변주한 이들 캐릭터의 사회적 역할과 본분을 바로잡아 보여주려는 듯이 역할이 주는 무게감을 지탱합니다. 

 


'소년심판'은 김혜수가 어른의 자리를 고민하면서 연기한 작품처럼 여겨집니다. 이 드라마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소년 범죄를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드라마의 주 시청자인 부모, 어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력하다는 점입니다. 죄를 저지른 자식을 감싸거나 방관하거나 더 깊은 범죄의 늪으로 떠미는 부모들이 있는가 하면, 소년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살피는 이들이 있습니다. 억울한 피해자 가족의 목소리와 법관의 반성까지 담아 '소년 사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여러 소년들과 어른들을 다그치고 깨닫게 하는 심은석은 판사의 자리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하고, 자리가 주는 무거움을 받아들이며 외로워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바꿔 말하면 심은석의 신념이 곧 역할을 대하는 어른이자 배우 김혜수의 마음가짐과 상통합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기를 자주 보고 싶은 배우는 많습니다. 패션이나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은 배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배우를 보면서 그의 생각이나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배우는 드뭅니다. '소년심판'의 김혜수가 그렇습니다. 연기 40년 차에 접어드는 배우가 여전히 가슴 뛰는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 김혜수가 2022년에도 여전히 건재한 이유를 깨닫습니다. 앞서 자신의 생존 비결에 대해 "잘 끼어 있었다"라고 답한 인터뷰 대목에서 '잘'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소년심판'에서 심은석은 "제발 밥값 좀 하자"라고 외칩니다. 김혜수는 배우의 밥값을 제대로 치러왔습니다. 여기에 '소년심판'은 김혜수의 배우 연륜이 겹겹이 쌓인 어른의 밥상입니다. 이 잘 차린 밥상을 받고도 제대로 삼키지 못한다면 심은석의 대사를 비틀어 말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바뀌지 않는 어른을 혐오합니다"라고. '소년심판'은 김혜수의 정점 또는 최고작으로 꼽힐 것입니다. 물론 당분간만이고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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