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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우리는> 그들이 헤어져야 했던 이유 (ft. 공감되는 그들의 거짓말)

by Ms.만능 2021. 12. 23.

 <그 해 우리는> 그들이 헤어져야 했던 이유 (ft. 공감되는 그들의 거짓말) 



턱끝까지 차오르는 현실에 익사할 정도라서 제발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 가난했으면 좋겠던 여자 국연수(김다미 분)는, 아등바등 사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낮에는 햇빛 아래, 밤에는 등불 아래 누워있는 게 꿈인 남자 최웅(최우식 분)을 버렸습니다.

그들이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서로의 현실이 같지 않아서입니다.

 

 

 

 


연수에게 최웅은 잠깐 현실에 눈을 감게 해준 사람이고 가끔은 진짜 현실을 잊어버리게도 하는 남자였습니다. 가난을 먹고 가난 속에 잠들고 가난을 숨쉬던 연수에게 최웅은 그런 축복였습니다. 그리고 연수는 더 있다간 자신의 지독한 열등감을 최웅한테 들킬 것 같아서 최웅를 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최웅이 말했습니다. “왜 꿈인척 해? 왜 거짓말 해? 우리 지금 이러고 있는거 맞아? 다른 사람 아니고 우리잖아. 그저 그런 사랑한 거 아니고 그저 그런 이별한 거 아니잖아. 다시 만났으면 잘 지냈냐고, 그동안 힘들진 않았냐고. 그동안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사과하면 남들이 얕보고 무시할 거 같아 사과하기 힘들다”는 연수에게 최웅은 “나한텐 그래도 돼. 어차피 지는 건 나니까”라고 말해 줬었습니다.


고독하게 몇 시간째 작업 중인 아들을 지켜보다 어린 시절 혼자 놀게 했다는 죄책감에 불편하게 자리를 뜬 웅의 부모 최호(박원상 분)와 이연옥(서정연 분)도 연수에게 말했습니다. “웅이가 많이 힘들어했어. 너도 힘들었지?”라며 “밥 한번 먹으러 오라니까 왜 안와. 밥 한번 꼭 먹으러 와 맛있는 것 해줄께”라고.


연수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헤어진 건 너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오만 때문”이란 걸. 아울러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없었던 건 저들 중 누구도 신경 안쓰는 자신의 현실에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이라는 걸.

 


그걸 깨닫고 바라본 최웅은 낯설고 멋있습니다.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그 눈에 충만한 영혼의 자취가 느껴집니다. 선배 이솔이(박진주 분) ‘눈알에 영혼도 없이 왔다갔다하는 껍데기’라 평가하는 자신과는 달리. 그렇게 안변할줄 알았던 최웅은 변한 모습으로 연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남자 최웅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묻는 건 실례입니다. ‘어떤 꿈이 있냐?’고 묻는 건 무례일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이 최웅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유일한 답입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을 묻는 질문에도 덩달아 ‘없다’고 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국연수입니다. 연수 때문에, 또 연수 덕에 대학 갔고 연수 때문에 그림을 직업으로 갖게 됐으며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뻥차고 사라진 연수가 선사한 불면의 밤들이 최웅을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최웅에게 국연수는 천국이자 지옥입니다. 확실합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얼굴로 그동안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갔을 최웅에게 짠하고 등장한 국연수는 천국의 행복을 선사했고 지옥의 불행도 떠안겼습니다.

오랜 친구 김지웅이 보건데 ‘세상에 흥미라는게 없어 평소엔 아무 동요없이 고요하다 국연수만 나타나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국연수라면 아주 작은 것 하나에도 모든 게 흔들려 버리고 감정을 주체못하는 유치한 놈’이 되고 맙니다.

 


석가모니 앞에 나타난 마왕 파순은 석가모니의 입정을 깨는데 실패하지만 최웅 앞에 나타난 국연수는 최웅의 바닥까지 흔들어놓습니다.


물론 최웅만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최웅 앞에서 국연수도 평생을 지탱해온 ‘쿨한 가면’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식, 남자와 여자의 방식대로.

 


그런 둘이 주인공인 세상을 뷰파인드로 지켜봐야 하는 남자 김지웅(김성철 분)도 있습니다. 첫 눈에 반해버린 국연수지만 최웅이 좋아해서 한발 빠져 있는 중입니다. 그 최웅은 시간도, 일상도, 가족까지도 당연하다는 듯 나눠 준 친구였으니까. 덕분에 행복을 흉내낼 수 있도록 해준 친구였으니까.

 


그런데 자꾸만 진심이 드러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속내를 엉뚱하게 장도율(이준혁 분) 쇼앤샵 마케팅 팀장에게 들킨 모양입니다.

 

 

 

 


이 쓸 데 없이 눈치 빠른 특별출연자는 국연수와의 관계를 차마 묻지 못한 최웅에게 “참 쉽게 드러나는 사람이네요. 작가님. 생각하시는 그런 쪽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라고 조언해 버렸습니다. 그 탓에 최웅도 지웅에게 신경을 곧추세우게 됐습니다.

거짓말. 최웅을 향한 국연수의 거짓말, 국연수를 향한 김지웅의 거짓말이 이 세 청춘의 사랑얘기를 조마조마 지켜보게 만듭니다. 서로가 받은 것 보다 더 큰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길 바라면서. 멜로에 거짓말은 필수라는 생각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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