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마블 X 오스카 감독의 '잘못된 만남'?
마블 스튜디오와 아카데미 감독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터널스'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습니다. 마블 페이즈 4기의 핵심 영화가 될 것으로 주목받았던 '이터널스'가 높은 기대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물로 개봉 초반부터 비틀거리는 모양새입니다.
마블 영화 최초의 '썩토'(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평점 지수로써 60% 이하면 썩은 토마토라 이른다)입니다. 개봉 전까지 그나마 60%대를 유지했지만 개봉 후 51%까지 떨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3일 개봉해 이틀간 47만 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관객 반응은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이터널스'는 수천 년에 걸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 데비안츠에 맞서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주적 에너지를 가진 태초의 히어로 군단 '이터널스'는 어벤져스의 퇴장으로 허전한 마블 팬들의 가슴을 채워주리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게다가 감독은 클로이 자오입니다. 올해 4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매드 랜드'로 동양 여성 최초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오락영화의 끝판왕과 작가주의 거장의 만남,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감독보다 배우 주목도가 높았던 여느 마블 영화와 달리 감독의 능력과 개성이 '이터널스'를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란 기대가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클로이 자오와 '이터널스'의 조합은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잡으려다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습니다.
▶ 너무 많은 것을 잡으려다 다 놓쳤다
'어벤져스'가 '아이언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솔로 무비를 통해 히어로들의 개별 서사를 쌓아 올린 후 "어셈블!"을 외쳤다면 '이터널스'는 반대입니다. 10명의 초인 히어로를 한 편의 영화로 소개하며 새로운 세계로 관객을 초대합니다.
테나(안젤리나 졸리), 길가메시(마동석), 이카리스(리차드 매든),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에이잭(셀마 헤이엑), 세르시(젬마 찬), 드루이그(베리 케오간),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마카리(로런 리틀로프), 스프라이트(리아 맥휴)는 7천 년 전 우주 순환을 관장하는 셀레스티얼 아리솀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아 지구에 내려옵니다.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지적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 크리처 '데비안츠'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터널스들은 인류 문명의 발상과 역사의 흐름을 지켜보며 인간과 공존해왔습니다.
셀레스티얼 종족에 뿌리를 둔 '이터널스'의 세계관이 낯선 데다가 초인 히어로들은 아예 새로운 인물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2시간 30분에 욱여넣으며 갈등과 화해까지 담습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빌드업이 부실한 것은 물론이고 개별 히어로들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습니다. 액션신이 본격화되고 히어로 개개인의 역량을 시각화하면서 그나마 캐릭터가 선명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액션신의 빈도에 비해 '액션 디자인'이 크게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니 마음 둘 캐릭터가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으로 등장하는 데비안츠 역시 기능적으로 등퇴장하는 크리처에 그치고 만듭니다. 어떻게 해도 무찌를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과 악당이지만 묘한 매력의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타노스와 비교한다면 데비안츠들은 애송이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다행히 아리솀의 존재감은 이런 아쉬움을 일정 부분 상쇄시키긴 합니다.
'이터널스'는 7천 년의 인류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이터널스의 발자취를 플래시백으로 잇고, 세계관은 방대한 대사로 처리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다 보니 구성은 산만하고 전개는 늘어집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한 장면도 많습니다. 페이즈 3기까지 매 작품 세계관의 확장과 완성도의 진화를 보여왔던 마블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이터널스'는 세계관 정립도 캐릭터 빌드업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마블 히어로 무비는 그간 막대한 자본과 정밀한 기술력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탄탄한 원작 코믹스를 기반으로 영웅들의 서사를 촘촘한 세계관으로 엮었고, 그 결과 관객들을 10년 이상 충성 고객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야기와 볼거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재미라는 상업영화 최고의 목표에 도달해왔던 전례를 생각하면 '이터널스'는 오락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 클로이 자오, 인류애·다양성 강조…대작 연출은 미숙
클로이 자오가 '이터널스'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건 인류애와 다양성입니다. 백인 위주였던 '어벤져스' 멤버들과 달리 '이터널스'는 다인종, 다국적 멤버로 꾸렸다. 여기에 어린아이, 여성, 성소수자, 청각 장애인 히어로가 등장해 다양성을 꾀했습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이들은 고유의 생명체이자 인격체로서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지구에 뿌리내린 이터널스 히어로들의 존재론적 질문과 자아성찰까지 곁들였습니다. 클로이 자오가 '노매드 랜드'와 '더 라이더' 등의 전작에서 방랑자의 삶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열며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다만 오락영화로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요소는 충분히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클로이 자오가 뛰어난 감독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독립 영화만을 만들어온 감독이기에 대작의 운용법과 장르적 이해도는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맞지 않는 옷이라기보다는 준비 과정의 미숙으로 보입니다.
종전 마블 영화와 달리 폭넓은 사유를 요하는 질문을 던지고, 자연주의 연출 기법을 통해 히어로들의 고뇌를 시각화한 것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마블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관객이 원하는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원작 코믹스가 아무리 탄탄하다고 해도 이를 정리하고 요약하고, 취사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감독의 역량입니다.
▶ 길가메시, 이게 다야?…마동석이라 더 아쉽다
길가메시로 활약한 마동석은 자신의 매력을 잘 보여준 편입니다. 마블과 클로이 자오는 마동석의 특장점을 핵심적으로 파악해 '이터널스' 안에서 효과적으로 써먹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산행'과 '범죄도시'에서 보여줬던 손바닥과 주먹을 활용한 액션의 거의 그대로 가져와 데비안츠를 무찌르는 주요 능력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워킹이나 구도, 음향 효과 등이 타격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한 것 은 아쉽습니다. 다만 액션 장면의 아쉬움은 길가메쉬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이터널스'는 액션 연출에 있어 큰 아쉬움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마동석의 영어 연기였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보여줬던 톤보다 부드럽고 나지막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영어 연기만 하면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곤 했던 여타 한국 배우들과 달리 모국어처럼 편안하게 구사한다는 점은 극의 이입을 수월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동석의 활용폭은 아쉽습니다. 마동석의 '이터널스' 합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MCU 편입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만 두고 보면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물론 '프리퀄'이라는 여지까지 열어놓고 본다면 길가메시 캐릭터의 확장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블이 '이터널스'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 확장하고 변주해 나갈지에 따라 마동석의 재등장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 마블 페이즈4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터널스'는 쿠키 영상이 두 개입니다. 두 영상 모두 새로운 얼굴의 등장을 알리며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입니다.
무려 10명이나 등장했음에도 2~3명을 제외하고는 인상적이지 않았던 이터널스 히어로들을 생각하면 2~3초 남짓 등장한 새 얼굴의 등장이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특히 한 인물은 '어벤져스' 시리즈의 어떤 캐릭터와 연결고리를 가진 만큼 솔로 무비로의 확장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끝으로 마블 페이즈3가 막을 내리고 마블 페이즈4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을 이끌던 히어로가 퇴장한 후 마블은 새로운 판을 짜고 있습니다. 그러나 '블랙 위도우', '샹치' 그리고 '이터널스'로 이어진 페이즈 4기는 새로운 홈런 타자의 등장이라기보다는 단타만 친 대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무려 10년 이상 구축해온 MCU 세계관은 어디로 뻗어나갈 것인가. 이 여정은 순탄할까. 적어도 페이즈 4기의 세 편만 본다면 물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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