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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하지만, 불쾌하진 않은 환상같은 <환승연애>

by Ms.만능 2021. 7. 9.

 조금 불편하지만, 불쾌하진 않은 환상같은 <환승연애> 


이별한 네 커플이 한 공간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 혹은 추억을 애써 감춘 채 서로를 모르는 척 합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전 연인을 바라보려 해도, 새로운 이성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그를 발견하면 괜시리 속이 쓰립니다. 서운함에 덜컥 눈물이 나기도 하고, 보란듯이 일부러 다른 이성에게 말을 걸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던 과거의 커플은 생각이 많습니다. 헤어진 연인이 애틋하다가도, 새로운 이성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기 때문입니다.

 

 


진한 공감으로 과몰입을 유발하는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환승연애'는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지나간 사랑을 되짚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가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8명의 남성과 여성이 같은 집에 모여 살며 출퇴근과 끼니를 함께하고, 매일 밤 호감의 상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패널들은 누가 누구와 사귀었는지를 추리하고, 새로운 썸의 기류를 포착합니다. 여기까진 흡사 채널A '하트시그널'의 설정과 꼭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주는 무게감처럼 '환승연애'만의 진짜 재미는 따로 있습니다. 환승이라 부르고 환상이라 불리는 헤어진 연인과의 드라마틱한 상황들입니다.

 


'환승연애'는 현재 티빙에서 인기 프로그램 TOP8을 기록하고 있을 만큼 반응이 좋습니다. '환승'이라는 자극적 단어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날선 시선을 쏟아냈지만, 이는 화제를 유인하기 위한 제작진의 얕은 술수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별하는 과정에서 가장 나쁘게 꼽는 행위를 '잠수'와 '환승'이라 합니다. 잠수는 말 그대로 연락이 닿지 않은 채 관계가 흐지부지 정리되는 상황을 말합니다. 환승은 교제 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백 없이 곁을 바로 채우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하지만 '환승연애'에는 이미 수개월 전 연인 관계를 정리한 이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흔하게 아는 환승이라기엔 좀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환승연애'의 환승은 갈아타는 게이트와 게이트 사이의 구간이 꽤나 깁니다.

처음 한 공간에 모인 8명의 남녀는 연기하기 바빴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모른 척 해야했고, 한때 연인이었던 이가 새로운 이성과 웃고 떠들 때면 애써 무덤덤한 척 넘겨야 했습니다. 한눈에 봐선 누가 누구와 연인이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출연진들은 숙소 내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헤어진 연인이라는 관계는 참 복잡하고도 미묘합니다. 모든 걸 공유하던 가장 가까운 관계였지만, 더는 간섭할 수 없는 관계다. 결국 출연자 중 한 명은 숨죽여 울고 말았습니다. 님에서 남이 되어버린 연인에게서 더이상 자신을 향한 감정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청자들은 자신의 연애에 대입해 이들에게 몰입하게 됩니다.

 

 


빠른 전개도 몰입감을 더합니다. 단 2회만 공개된 '환승연애'는 회마다 과거의 연인을 한 커플씩 공개했습니다. 1회에선 이혜선과 윤정권이 과거 연인이었음이 밝혀졌고, 2회에선 선호민과 김보현의 관계가 공개됐습니다. 물론 같은 공간에 있는 8명은 누가 누구와 커플이었는지 모릅니다. 패널과 시청자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8명은 계속해서 연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X 커플이 공개된 후 '아 그래서 그랬구나'싶은 행동들이 눈에 밟히며 흥미를 돋웁니다. 혜선이 그리웠던 정권이 계속 그의 주위를 맴돌고, 호민을 바라보는 보현의 애틋한 눈빛이 그제서야 이해됩니다.

X가 직접 쓴 '나의 X 소개서'나, 헤어진 연인의 연애 지침 가이드를 해주는 'X 채팅룸'은 출연진과 시청자들의 감정을 휘저어 놓습니다. 이들은 헤어진 연인의 감동 어린 말들에 눈물을 보이고, 새로운 이에게 선뜻 전 연인과의 데이트 팁을 알려 주지도 못합니다. "나라도 그럴 것"이라는 패널들의 적재적소 멘트는 공감을 유발하며 어느새 출연진들에게 몰입하게 만듭니다. 괴롭지만 차라리 모르고 싶은 게 옛 연인의 연애입니다.

새로 피어나는 '썸'도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정권은 혜선을 보기 위해 '환승연애'에 나왔다고 말했지만 단 이틀만에 새로운 이성에게 호감 메시지를 보냅니다. 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날 정권에게 향했던 메시지는 둘째날 다른 이에게 보내졌습니다. 차가울 것 같았던 혜선은 금세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엌 한 구석에서 선호와 단둘이 웃고 떠들며 묘한 기류를 자아냅니다. 과거의 연인과 추억이 깃든 곳에서 첫 데이트를 앞둔 8명의 마음도 싱숭생숭합니다. 'X 채팅룸'에서 남성들은 새 데이트 파트너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며 꽤나 적극성을 보입니다. '환승연애'가 마냥 과거 인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걸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던 장면입니다.

 


제목만 보고 경계했다가 금세 응원으로 마음이 뒤바뀌었습니다. '매운맛'의 자극적 설정이 깔려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환승연애'는 출연진들의 본연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제작진은 이들에게 억지로 많은 판을 깔지 않습니다. 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깨우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잔잔한 계기만을 만들어줍니다. 작위성이 난무하는 최근의 연애 예능에서 우연히 맛집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불편할 수 있어도 일단 불쾌하진 않은 좋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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