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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승리호>, 그 속에서 빛난 김태리

by Ms.만능 2021. 2. 12.

2% 부족한 <승리호>, 그 속에서 빛난 김태리

 

요즘 넷플릭스에서 <승리호>가 엄청난 화제작이죠? 다들 보셨나요? 소문이 무성한 영화였기에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미뤄지고 결국 넷플릭스행이 확실시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은 바 있는데요, 저 역시 조성희 감독의 전작 <늑대소년>김태리 배우의 팬으로서 영화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전반적인 서사와 캐릭터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넷플릭스 1위 등극과는 별개로 2% 부족한 영화라는 씁쓸한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 부족한 <승리호>지만, 그 속에서 빛난 '갓태리'가 있습니다.  

 

 

 

※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입니다.

 

예고편을 보며 불안했던 마음이 영화 시작과 함께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 제작 영화사 비단길)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승리호>의 김태리 이야기입니다. 공개된 예고편만 봤을 때는 김태리가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우주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장르물의 정점인 우주 영화와 김태리가 가진 특유의 자연스러운 매력이 조화롭게 어우러질까 걱정이었죠. 충무로 최초라는 외적 상황 외에도, 김태리 개인으로서도 여러 캐릭터의 앙상블이 중요한 작품 역시 <승리호>가 처음이었습니다. 연기 외의 장치가 치렁치렁 달린 상황 속에서 김태리가 연기 맛을 십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죠.


하지만 김태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호>였습니다. 영화가 우주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다시 이곳으로 정신없이 오가는 와중에 김태리는 우직하게 승리호의 선장 역할을 해냈습니다. 수많은 대사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김태리가 연기한 장 선장의 “안 돼. 정의롭지가 못해”라는 대사 하나만은 귀에 확실히 꽂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승리호’에서 가장 또렷한 발음으로 중요한 대사들을 짚어낸 건 바로 김태리였습니다.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는 우주 영화에서도 제 기능을 다 했습니다. 역시 딕션여왕 김태리!

 


<승리호>가 거둔 여러 성취의 중심에서 단연 김태리는 빛났습니다. 많은 이가 언급하고 있고, 필자 역시 감탄하며 지켜본 컴퓨터 그래픽의 완성도는 가히 압도적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제작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자본으로 대부분 장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더해, 성 정체성의 다양화, 전형성을 깨부순 시도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남성 캐릭터인 로봇 업동이(유해진)는 사람 피부 이식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됩니다. 사실, 애초에 로봇에 성별이 있다는 생각부터가 편견이었던 거죠. 아이 꽃님(박예린)이 업동을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합니다.

 


그 가운데 소위 ‘예쁨’을 연기하지 않은 김태리의 캐릭터는 진정 반가웠습니다. <매드맥스>의 퓨리오사를 보며 느낀 쾌감이 <승리호>의 김태리에게서 느껴졌습니다. <승리호>에 시원시원한 질주의 감각을 더한 것에는 김태리의 역할이 컸습니다. 거기다 은근히 웃기기까지 합니다. 김태리가 이런 식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가능하다니, 이 배우의 캐릭터 소화력은 어디까지일지 신선했습니다. 예고편만으로는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비주얼도 이제는 김태리가 아닌 다른 배우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처음엔 낯설었던 올백 헤어스타일, 보잉 선글라스가 이제는 김태리의 트레이드 마크 가운데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가죽 재킷을 이렇게 멋스럽게 소화한 배우는 영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 이후 김태리가 처음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이려나...? 하여간 비주얼적으로도, 캐릭터적으로도 그동안 김태리에게서 볼 수 없었던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본 무대였고, 그것이 꼭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더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작품 안에서 늘 제 운명은 스스로 쟁취해내던 김태리였습니다. 영화 <아가씨>에서는 외조부의 책을 찢으며 아가씨(김민희)의 구원자를 자처했고, <1987>에서는 호헌철폐와 독재 타도를 울부짖었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명문가 신분을 벗어던지고 의연하게 총구를 장전했습니다.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또 어떠한가요. 차가운 편의점 도시락을 먹던 삶을 멈추고 느리더라도 제 속도로 사계절을 달리는 인생을 택합니다. <승리호>에서도 대놓고 정의롭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속물에 가까웠지만 결국엔 정의를 향해 내달리는 믿음직스러운 선장이 바로 김태리였습니다.

 


신파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한국 관객들에게 <승리호>는 2% 부족한 작품일 수 있습니다. 이 개성 넘치는 캐릭터, 세계관 속에서 꼭 부성애라는 코드를 택해야 했는지.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지 분명 아쉬운 지점입니다. 엔딩에서 흥이 팍 죽은 것도 사실이었고요. 그런데도 영화가 거둔 몇 가지 성과만큼은 확실히 박수 쳐주고 싶다. 그리고 그 중심엔 김태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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