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의 묵직함 "이룬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걸까"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은 제목부터 무겁다.
1화의 부제가 ‘인간의 자격’인 것을 보면 이 드라마의 인간들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실격(失格)되었거나 그렇다고 여기는 것일 테다. 1화 첫 부분 시작되는 부정(전도연)의 내레이션을 보라.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온 그날부터 저는 내내 인간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 친구, 동료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격.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온전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을 판단하고 비난하고 분노하고 절망할 자격.”
부정의 내레이션은 역할 대행 서비스로 한 여성과 모텔에 온 강재(류준열)의 상황에 울려 퍼지며 중첩된다. ‘손님’인 여성과 모텔에 들어왔지만 ‘서비스 시간이 끝났고 2차는 불법’이라 그 이상의 관계를 마다하는 강재지만, 부정의 내레이션처럼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세상의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이라 보기는 어렵다. 강재가 과거에 ‘호스트바’에 일했던 ‘선수’였던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의 자격에 대해 내내 생각하고 있다는 부정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 출판사에서 대필작가로 일하다 일용직 가사도우미가 된 부정은 ‘악플’로 경찰의 출석요구서를 받은 상황. 휴대전화에 남편을 본명 진정수(박병은)로 저장해둘 만큼 남편과의 관계는 데면데면, 며느리의 우편물을 몰래 뜯어보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시어머니 민자(신신애)와의 관계는 최악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태산처럼 바라보는 아버지 창숙(박인환)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다. 대필작가였던 자신, 일용직 가사도우미가 되었으나 그마저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 악밖에 남지 않아 ‘악플러’가 된 자신도 모두 인간으로서 실격인 것만 같다. ‘
인간실격’은 1, 2화 동안 부정과 강재가 처한, 자기 이름 당당히 걸고 살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부정과 강재가 세상 앞에 당당하지 못한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부정이 대필작가가 되고, 대필작가에서도 쫓겨나 가사도우미가 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돈일 것이다. 강재가 호스트바 선수로 일했다가 역할 대행 서비스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거고. 심지어 강재는 같이 호스트바 선수로 일했던 절친한 형 정우(나현우)의 자살 소식을 듣고도, ‘자신에게 정우처럼 큰 거 두 장(2억 원)이 현금으로 있다면 마음이 허하고 그래도 별로 안 죽고 싶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부정은 아예 아버지 창숙 앞에서 오열하며 말한다. “나는 실패한 것 같애. 나 실패한 거 같아요. 그냥··· 그냥 내가 너무 못났어. 나 그냥 너무 나빠진 것 같애. (중략) 나는 아무것도 못 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 됐어.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거 같애요. 그래서 너무 외로워, 아버지. 아버지고 있고, 정수도 있는데 그냥 너무 외로워.” 그러면서 방점을 찍는다. “나는 아버지보다 가난해질 것 같애. 더 나빠질 것 같애.” 물론 부정이 말하는 가난이 100퍼센트 경제적 가난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 반대로 상당부분 돈을 뜻하는 것도 맞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21세기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인이 돈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그것이 평범한 인간이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인간의 정체성까지 거론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하고도 씁쓸하다. 40대의 부정은 물론 아직 창창한 스물일곱 살의 강재가 돈(혹은 돈으로 파생되는 사회적 지위나 명예)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리는 사회가 얼마나 씁쓸한가.
물론 ‘인간실격’이 돈에 좌지우지되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돈(과 힘)으로 좌지우지되지 않고 온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싶기 때문이니까. 때로 그 수단인 돈이 목표와 뒤바뀌며 혼동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사람들은 돈을 탐한다. 그러다 인간다움을 실격하기도 한다. ‘인간실격’은 실격된 사람들과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을 오가며 인간의 자격을, 인간다움을 이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부정이 “당신 때문에 직장도 잃고 아이도 잃고 나를 잃었”다고 분노를 보인 배우이자 스타 작가 아란(박지영)이나 잘 살고 싶어서 연인이던 정수와 헤어지고 부자 남편과 결혼한 경은(김효진)처럼 가진 자들, 사회적으로 이룬 것이 있어 보이는 자들을 ‘인간실격’이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명불허전의 영화들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과 영화 ‘건축학개론’ ‘소원’ 등을 집필한 김지혜 작가의 첫 번째 드라마 작품이자 전도연과 류준열이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드라마, JTBC의 10주년 특별기획 ‘인간실격’. 이미 1, 2회에서 영화 같은 연출과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 그리고 그 안에서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연들뿐 아니라 박인환, 박병은, 김효진, 조은지, 짧게 지나치긴 했으나 양동근까지 믿고 볼 만한 배우들이 든든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전도연이다.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호불호는 있어 뵌다. 지나치게 어둡게 그려지는 인물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면을 살 여지가 있다. 그 어두움과 무거움을 견뎌내고 많은 이들에게 ‘인생 드라마’로 등극한 ‘나의 아저씨’처럼, ‘인간실격’도 사람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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